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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디옥 칼럼

2020년 7월 5일: 자신이 하나님이 되어 하나님을 우상처럼 부렸던 헨리 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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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필라안디옥교회
댓글 0건 조회 6,113회 작성일 21-06-18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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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학자가 ‘청교도운동’이 영국의 왕 ‘헨리 8세’(1491-1547)의 시대에 종교개혁자였던 ‘윌리엄 틴데
일’의 사상에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청교도 이야기: 오덕교 지음).
헨리 8세는 철저한 로마 카톨릭 교도였다. 로마 교황에게 잘 보여야 왕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시대였
다. 즉, 종교와 정치가 혼탁하게 결탁되어 야합과 분열을 되풀이하던 때였다. 헨리 8세는 당시 로마 교황
의 주선으로 교황의 형의 미망인인 캐서린과 결혼하였다.
캐서린이 딸 메리를 낳고는 아들을 못 낳자 이혼을 청구하였다. 교황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헨리
는 교황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젊은 앤 볼린과 결혼하였다. 1534년에 영국 의회의 동의를 얻어 ‘수장령’
(Act of Supremacy), 즉 왕이 영국교회의 머리가 됨을 선포하였다. 자신의 이혼과 결혼을 반대하였던 로
마 카톨릭파 리더들을 참수하였다. 새로 맞은 왕비 앤이 아들을 못 낳고 딸 엘리자베스를 낳자 크게 실
망하여 앤이 부정한 여성이라고 누명을 씌워 처형하였다. 제인 쉐이머를 새 아내로 맞아 에드워드 6세
아들을 얻었다. 자신이 곧 하나님이 되었고 진짜 하나님을 우상처럼 자신의 목적달성을 위한 도구로 사
용했고 자신을 섬기는 자로 살았다.
로마 카톨릭과 결별하고 영국의 ‘성공회’교회의 머리가 된 헨리 8세가 토마스 크롬웰의 간언으로 라
틴어 성경을 영어로 번역해서 성경을 영국의 모든 교회에 비치하였다. 그 전에는 로마 카톨릭의 ‘우민정
책’으로 일반 성도들은 성경에 무슨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지 몰랐다. 그러나 성경 말씀대로 교회를 개혁
할 의사가 전혀 없던 헨리 8세는 자신이 하나님이 되고 교회의 머리가 되어 교회를 다스리기만 원하였
지 진정한 교회개혁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영어로 성경을 번역하였던 윌리엄 틴데일을 화형에 처
하였고 존 후퍼와 존 베일 같은 개혁자들은 대륙으로 피신하였다.
헨리 8세가 죽고 그의 아들 에드워드 6세가 8살의 나이에 영국의 왕위에 올랐다. 외삼촌이 섭정하였
고 다행히 성공회의 캔터베리 대주교였던 토마스 크랜머가 종교개혁운동을 발전시켜 나갔다. 교회 안
에서 우상적이고 미신적인 동상이나 조각이나 성자 제도 등을 일체 거부하였다. 그러나 에드워드 6세가
16세의 어린 나이에 결핵에 걸려 죽자 캐서린의 딸 메리가 왕위에 올랐다. 그는 영국교회 안의 모든 개
혁주의자 300명을 처형한 ‘피의 메리’(blood Mary)가 되었다. 800여명의 개혁자들이 유럽대륙으로 피신
하였고 캘빈과 교제하며 청교도의 씨앗들이 되었다.
- 호성기 담임목사 Rev. H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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