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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2일: 존 맥케인 상원의원이 남긴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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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ep 0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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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이 존경 받기가 참 힘든 세상입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정치인들의 이합집산이나 배신과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모습 등을 통하여 많이 실망하면서 좋아하는 정치인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8월 31일 토요일 아리조나 피닉스에서 존 맥케인 상원의원의 운구가 워싱턴 국회의사당으로 공중으로 옮겨지고 추도식이 진행되는 모습을 바라보며 정치가가 이렇게 존경을 받을 수도 있는 것에 감동을 많이 받았습니다. 저도 평소에 좋아하였던 존 맥케인 상원의원이 물론 이런 저런 실수도 있었지만 오늘 미국인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그의 유산을 살펴봅니다.
첫째, 존 맥케인 상원의원은 ‘미국’이라는 나라, 국가라는 공동체를 섬기는데 정실이나 그 어떤 인맥이나 끈으로, 심지어 공화당원 이었지만 ‘당을 초월하여’(바이파티즌: Bipartizen) 진실되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별명은 ‘매버릭’(maverick: 주인의 낙인이 찍히지 않은 송아지: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독립적을 행동하는 이단아) 이었습니다. 공화당원이면서도 공화당의 잘못을 비판하고 민주당이 옳으면 민주당 바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대권에서 패하고도 그를 축복하고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도 흑인 대통령을 옹호하였습니다. 그는 ‘나라’에 헌신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헌신하는 사람입니까?
둘째, 존 맥케인이 ‘전쟁의 영웅’으로 미국인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은 두 번째 유산은 그가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베트남 전쟁에 공군 조종사로 참전하였다가 비행기가 포격을 받고 추락하여 베트콩의 포로가 되었을 때 였습니다. 그의 부친이 당시 해군제독 4성 장군으로 태평양 사령관이었을 때였습니다. 그의 조부도 미 첫 해군제독으로 4성 장군의 명문가문이었습니다. 베트콩이 그의 부친인 태평양사령관이 그의 친아버지 임을 알고 조기석방을 카드로 협상을 제안하였을 때 그는 다른 포로와 똑같이 감옥에 있을 것이고 타협하지 않을 것을 선포하고 모진 고문을 받으며 5년 동안 포로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특권층이 특권을 포기하고 다른 병사들과 함께 포로의 삶을 산 것이 그를 ‘전쟁영웅’이 되게 하였습니다.
셋째, 그는 포로생활에서 모진 고문으로 평생 다리를 절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테러범들에게 고문을 가하여도 된다는 부시 대통령의 법안, 공화당의 법안에 공화당 상원으로서 반대를 하였습니다. 어떤 경우에 어떤 사람에게도 고문을 하여서는 안 된다는 포로된 자의 옹호자로 살았습니다.
넷째, 그는 81세에 뇌종양의 병마를 지탱케 하여준 호스를 떼어버리고 하나님의 손에 자신을 맡기고 천국을 향하여 떠난 그리스도인 이었습니다.

안디옥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