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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25일 안디옥칼럼: 예수님의 비범하심이 나의 비범함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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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r 2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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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과 비범한 사람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평범한 사람은 이 세상의 사물을 볼 때 그냥 눈에 보이는 현상, 즉 사실(fact)을 보고 삽니다. 비범한 사람은 눈에 보이는 현상인 사실(fact) 속에서 영안으로 눈을 떠서 진실(truth)을 보고 삽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도 비범한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전혀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고 삽니다.
한국의 국민일보 선임기자이자 종교국 부국장으로 폭넓은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신실한 그리스도인 이태형 기자가 쓴 ‘더 있다’라는 책에서 현대무용의 개척자 마싸 그래이엄(Martha Graham, 1894-1991)의 어머니가 어린 딸에게 들려준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마싸야 물병 속에는 물만 들어있는 것이 아니란다. 네가 보지 못하는 수많은 것들이 있어. 그것을 보아야 해.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알아야 비범하게 되는 것이란다.’ 어린 딸에게 해준 엄마의 말 한마디는 마싸로 말미암아 평생 남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게 하여 줌으로 그녀의 춤에는 어떤 춤이던지 평범한 춤이 없었다고 합니다.
여리고 성의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만나 부르짖어 기도하였을 때 그가 ‘다시 보게 된지라.’ 그 후로 바디매오는 평범하였던 삶이 비범한 삶으로 변화 되었습니다. 그냥 눈을 뜬 것이 아니라 보지 못하던 진리, 듣기만 하였던 예수님, 구세주를 보고 예수님을 따르는 고난의 삶, 십자가의 삶을 살아가는 비범한 제자가 되었습니다.
선지자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보냄을 받아 안수기도 하였을 때 사울의 눈이 열렸습니다. 사울이 성령충만함을 받았을 때 ‘눈은 떴으나 보지 못하던 사울’이 ‘다시 보게 된지라.’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진 후 사울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진리로 말미암아 변화 받아 비범한 삶을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비범한 삶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삶’ 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기도 가운데서 깨달으시고 하나님의 뜻을 듣기만 하신 것이 아니라 ‘다시 보시게 되어’ 십자가의 길을 거부하지 않고 고난의 길을 가셨습니다. 평범한 삶에서 비범한 삶으로의 비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죽기 위하여서’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 하셨습니다. 오늘도 평범한 사람은 어떻게 하여서든지 살기 위하여 삽니다. 비범한 사람은 죽기 위하여서 삽니다. 평범은 편안한 삶을 추구합니다. 비범은 좁고 험하고 많은 사람들이 가지 않는 삶을 살게 합니다. 그리고 그런 삶 속에서 무지하게 행복합니다.

- 호성기 담임목사 Rev. H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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