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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디옥 칼럼

2021년 10월 17일: 죽이며 사는 사람과 살리며 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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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on
댓글 0건 조회 3,769회 작성일 21-10-17 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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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욥이 깊은 절망 속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였을 때 세 친구가 그를 찾아왔다. 세 친구의 말은 욥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왜? 무슨 이유로? 세 친구는 옛 언약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즉, 율법을 잘 지키며 살았던 사람들이었다. 즉, 자신의 행위로 자신을 의롭다고 여겼던 사람들이 었다. 


 ‘옛 언약의 일꾼’들은 ‘율법’의 잣대로 사람을 평가한다. 그리고 죄인을 정죄하여 죽인다. ‘율 법’도 하나님이 사람을 살리라고 주신 것인데 ‘옛 언약의 일꾼’들은 ‘율법’을 세우기 위하여 죄인 을 죽인다. 욥의 세 친구는 욥이 죄 때문에 고통당한다고 정죄하였다. 그들의 말은 공의와 정의로 대변되는 율법의 선포였다. 그 율법으로 욥을 죽였다. 


 ‘새 언약의 일꾼’들은 율법이 아닌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죄를 대신하여 죽 으시고 나의 의를 위하여 부활하신 것을 믿는다. ‘새 언약의 일꾼’들은 행한 것이 죄 밖에 없는 사 람들이다. 그 죄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주셨다. 죄에 대하여 죽고 죄인이 살아났다.


‘새 언약의 일꾼’들은 예수와 함께 죄에 대하여는 죽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에 대하여 살 아난 사람들이다. 그래서 ‘새 언약의 일꾼’들은 죄는 죽이고 죄인을 살리며 산다. 자신이 그것을 체험하였기 때문이다. ‘새 언약의 일꾼’은 나의 의로움으로 고통당하는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그 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공감’한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 라.'’(롬 12:15). 


 둘째, ‘새 언약의 일꾼’은 나의 의로움에 맞추었던 초점을 주님께로 돌린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바라본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 보자’(히 12:2). 예수님의 의는 자신을 죽여 나를 살리신 것이다. 


 셋째, ‘새 언약의 일꾼’은 나를 살리신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만큼 그 사랑을 고통당하는 사람 에게 나누어 준다. 사랑의 전달자로 살리며 산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 랑하라’(요 13:34).


 ‘옛 언약의 일꾼’은 절망에 대한 확실성을 말한다. 너는 이런저런 죄를 지었기에 확실히 망할 거야. 그러나 ‘새 언약의 일꾼’은 절망의 확실성을 확인하지 않는다. 주님이 주시는 ‘생명과 평안 의 확실성’을 믿고 산다. 나는 이래서 저래서 확실히 망할 거야! 가 아니라 나는 이러함에도 불구 하고 예수님 안에서 확실히 다시 일어날거야! 나와 주변 사람을 죽이는 율법의 ‘옛 언약’에서 풀 려 예수 안에서 ‘새 언약’으로 나아와 사람을 살리며 살라! 


호성기 담임목사 Rev. H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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